지난달 1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34)씨는 콧물을 흘리는 난 지 9개월 된 딸을 데리고 동네 의원에 다녀온 뒤 `기적'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딸의 감기 기운이 잦아든 것은 물론 늘 얼굴에 달고 살던 태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최근 다시 그 소아과에 찾아간 이씨는 의사가 조제실에 대고 외치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덱사 주사!” 진료실을 나선 뒤 처방전을 기다리고 아이에게 주사를 맞히는 동안에도, 이씨는 2~3분마다 한번씩 “덱사 주사”를 외치는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덱사가 무엇이냐”고 묻고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덱사는 부작용이 큰 강력 스테로이드제로, 소아에게는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화가 난 이씨는 다시 소아과로 찾아가 의사에게 따졌다. 그러자 의사는 “댁의 딸은 그 주사 안 맞으면 입원해야 한다”고 겁을 줬다. 이씨는 병원 발길을 끊었다. 물론 딸아이는 입원을 하지 않았고 며칠 뒤 감기도 나았다. 지난해 10월 녹색소비자연대는 의·약간 담합행위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처방전 500여장을 모아 분석한 뒤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서울 중구의 한 소아과의원에서는 아기들에게 `노발긴'이라는 약을 먹는 약과 주사제로 중복 투여한 사실이 여러 건 발견됐다. 노발긴은 심하면 백혈구 급감으로 사망에 이르는 무과립세포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연대 조윤미 건강안전국장은 “스테로이드제를 먹는 약과 주사제로 중복 투여하는 경우는 흔했고, 설사증상을 보이는 소아에게 정신분열증이나 불면증에 쓰는 향정신성의약품 메드로정을 처방한 경우까지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주사제는 가끔 ‘특효약’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의 ㅂ의원은 만성피로증후군 특효주사로 이름이 높다. 문제는 특효주사라는 부신피질호르몬제가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작용까지 일으킨다는 것이다. 1997년 말부터 1년 남짓 이 주사제를 맞은 10대 소년이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전신피로증세를 보이는 ‘쿠싱증후군’에 걸리자 소송을 내 1심에서 8천만원의 배상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도 문전성시다. 모르고 맞는 스테로이드제 ‘특효주사’가 주사제 ‘오용’의 사례라면, 알게 모르게 맞는 항생제 ‘보통주사’는 ‘남용’의 전형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일반외과가 항생제를 `절여놓는' 수준이라면 정형외과는 `푹 담가놓는다'는 말을 의사들끼리 한다”며 “주사제 오용이 일부에 국한되는 경우라면, 남용은 우리 나라 의료현장의 보편적 현실”이라고 말한다. 98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박실비아 연구원이 쓴 논문을 보면, 우리 나라 의료보험 급여청구 분석 결과 단순감기에 대한 주사제 처방률은 어른이 74.5%에 이르고 어린이도 59.3%나 됐으며, 기관지염의 경우에도 각각 75.2%와 63.7%에 이르렀다. 특히 감기에 대한 주사제 처방 가운데 항생제 비율이 79.2%에 이르러 어린이들이 항생제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나라의 공식적인 주사제 사용률은 57%로, 흔히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사용률 17%에 비해 세 배 남짓 높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기준은 외래환자만 계산한 것이고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은 입원환자까지 포함한 것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기획국장은 “세계보건기구 기준에 맞추면 우리 나라 주사제 사용률은 70%에 육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