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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섬 랑카위 그리고 억울한 죽음

작성자김사연 작성일2017.05.12 조회수7 추천수0

저주의 섬 랑카위 그리고 억울한 죽음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5월 08일 월요일 제11면

▲ 김사연 수필가

말레이시아는 한반도보다 1.5배나 큰 면적이면서 인구는 우리보다도 적어 대망의 2020년을 목표로 다산(多産) 정책을 펴고 있다.

50%의 말레이시아 원주민과 35%의 중국계와 15%의 인도계 민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경제권은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미군의 휴양지로 잘 알려진 ‘펜낭’과 남단에 위치한 ‘코타키나발루’와 마하트로 수상(首相)의 고향이기도 한 ‘랑카위’가 대표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말레이시아의 입국은 쿠알라룸푸르의 ‘수방’비행장을 경유해야 한다.

‘수방’은 ‘귀걸이’란 뜻으로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옛날, 한 추장이 사랑하는 부인에게 귀걸이를 선물했다. 부인은 실수로 귀걸이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여인은 귀걸이를 찾기 위해 밀림 속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한 쪽밖엔 찾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전설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영종도에 국제공항을 건설하면서 ‘세종’이니 ‘영종’이니 ‘인천’이니 갈피를 못 잡던 우리네 현실에 비교할 때 그들 나름의 의미를 간직한 지명이 부러웠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104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랑카위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1시간 비행 거리에 위치한, 마치 독수리가 비상하는 형상의 섬이다.

관광지라기보다 휴양지로 세파에 물들지 않은 곳으로 현대건설이 각종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섬의 개발이 늦어진 데에는 ‘마수리’부인의 한 맺힌 저주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기와 질투심이 유별난 랑카위섬 추장의 부인이 있었다. 반면에 추장 형(兄)의 부인인 ‘마수리’는 어질고 착한 현모양처였다.

어느 날 남자들이 사냥을 떠난 사이 낯선 태국 군이 표류해 왔다. ‘마수리’는 기진맥진한 이방인을 정성껏 치료한 후 돌려보냈다.

남자들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추장의 부인은 항상 자신과 비교돼 오던 ‘마수리’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 풍문을 퍼뜨렸다. 그것도 모자라 ‘마수리’가 태국 군과 정을 통했노라고 추장에게 고자질을 했다.

처음엔 귀담아 듣지 않으려던 ‘마수리’의 남편도 소문이 꼬리를 물고 들려오자 ‘마수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부정한 여인을 극형에 처벌하는 부족의 관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형되기 직전 남을 미워할 줄 모르고 어질기만 했던 ‘마수리’의 입에선 서릿발 같은 저주가 터져 나온다.

"신(神)이 내 결백을 증명해 준다면 내 몸을 찌르는 순간 하얀 피가 솟구칠 것이다. 앞으로 7대(代)를 이어나갈 때까지 인적이 발을 붙이지 못하리라!"

　그녀를 기둥에 묶고 오른쪽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순간 백혈(白血)이 분수처럼 뻗쳤다.

그 후 주변의 나무들은 땅속에 스민 ‘마수리’의 하얀 핏물을 흡수한 탓인지 모두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저주대로 종족의 숫자가 줄기 시작해 사람보다 물소의 숫자가 더 많아지게 됐다.

오래 전부터 말레이시아 정부는 랑카위섬을 개발하려 시도했지만 폭풍을 만나 상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7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그 해가 바로 ‘마수리’의 210여 년에 걸친 기나긴 저주가 끝나는 해였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개발 자재를 실은 배는 아무 탈 없이 상륙할 수 있었고 인적의 숫자도 물소와 비슷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마수리’의 무덤 앞에 서니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는 여인의 한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공통분모일 수밖에 없는 여인의 질투심이 빚어낸 슬픈 종말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하얗게 바랜 나무줄기를 올려다본다. 순결과 정절, 이해와 사랑을 음미하는 백색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대선을 앞둔 요즘, 2015년 4월 9일에 자살한 경남기업의 대표이며 전 국회의원인 성완종 리스트에 관련된 이들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돈을 주고도 배신당해 억울하다며 죽음을 택한 사자(死者)와 우리는 결백하다며 법의 판단에 호소하는 생자(生者)의 싸움에서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